영화를 왜 만드는지 이 감독은 pd수첩 같은 비슷한 사회에 대한 고찰을 담긴 방송 PD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들의 메세지가 사회고발적인 영화가 꽤 있다.
아동방치를 다룬 '아무도 모른다' 일본 사회의 빈곤가를 다룬 '어느가족' 등이 있다.
이영화도 뭔가 범죄에 대한 질문을 하는듯한 영화다.
줄거리는 범인은 사람을 죽였고 자백하고 사형은 확실했다. 범인의 변호사 시게모리는 사건을 조사하고 피해자의 딸 사키에의 진술은 번복되고 모든 것을 의심한다.
세번째 살인은 솔직히 모호한 영화다 . 아직도 결론을 잘 모르겠다.
사건이란건 복잡하다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 내용을 단순하게 말할수가 없다.
일단 범인으로 나오는 주연 배우가 너무 착하게 생겼다. 이제까지 일본의 안성기 처럼 선한 배역으로 나왔다. (쉘위댄스같은 친근한 영화) 그래서 범인의 편을 들고 영화를 보게 된다
주인공인 변호사도 범인이 조금이라도 감형받기 (사형이라도 면하기 위해) 자백을 하는 범인의 말을 믿기보단 적극적으로 사건을 검색한다.
사건에 다가갈수록 범인의 자녀가 죽였나? 그냥 미스테리하게 나온다.
사건의 범인의 자백은 확실하지만 변호사는 계속 사건에 대해 파혜치고 여자 검사는 범인측 변호사한테 경고한다. "당신간은 변호사가 범인이 자신의 죄를 못마주하지 못하게 한다" 대사가 있다.
난 이 대사가 너무 와닿았다. 강력 사건이 뉴스에 나올때면 이영화가 생각난다.
고유정 사건에도 비싼 변호사들을 채용하다가 여론의 심판을 받았는데 그 사람들의 말은 "사건의 실체를 가까이 알고 싶었다"라는 성명을 냈다. 물론 변호사는 누구에게나 변호를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는 분명 뛰어난 변호사들의 변명들이 분명 범인 본인이 죄를 축소시키게 느끼게 해주는게 소름끼쳤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생각나는 이유는
실제 사건들의 살인자들은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착해보이지 않다.
더 잔인하고 더 변명하며 그들이 고액으로 고용한 변호사는 정확한 사건의 변호가 아닌 사건에 집중하지 않고 변명으로 포장하는 사건들이 꽤나 있다.
그럴때마다 이 영화의 검사가 했던 대사가 생각난다. 그 토록 잔인한 범죄를 혼자 저질렀으면 왜 재판장에서 사건을 마주 해대지 못하며 자백을 제대로 하지 않고 증거에 변명하며 없는 피해자를 가엾게 하는 사람들에게 비통함을 느끼게 한다
독일의 어느 커플이 휴양지를 갔다가 숙소에서 십대 강도단을 만나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부인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들을 못잡은채 2년후 부부는 멀쩡한척 하며 지낸다. 사실은 속은 망가져있는채로 완벽한 일상을 보낸척만한다.
주변에서는 그 상처에 대해서 배려없는 호기심을 내비추고 부인은 심리상담을 받지만 소용없다. 그러다 남편이 샐러드집에서 우연히 범인을 만나게 되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니 멀쩡한 직장에 예쁜 애인과 버젓이 살고 있다.
남편과 부인은 그 범인이 일하고 있는 일터에 보러 가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2년전 사건이고 십대라서 징역 1년이 최고라고 하니. 이 사실을 알게된 부부는 또다시 일상유지 조차 어렵다. 그리고 남편은 그 범인과 한번 싸우게 되고 범인은 또 도망간다.
여전히 범인은 뻔뻔한다.
남편은 그 범인의 애인에게 찾아가 남자친구의 범행에 대해 알려준다.
범인의 애인은 충격을 받고 헤어진다.
범인도 역시 남편의 발자취를 쫒아 집으로 찾아 부인을 만나지만 경고만 한채 헤어진다. 그리고 부부가 다시 범인을 죽일 정도로 혼내주지만 범인은 신고하지 않고 그냥 맞아준다. 그게 진정한 사과인줄라는 건 잘 모르겠다.
부부는 복수를 끝내고 독일 부부답게 집에 돌아와 집정리를 하지만 집안의 물건들을 다 뿌셔본다, 모든 한을 풀어내듯.. 원래 마음은 이런거였다고 알려주듯이..
이 영화는 독일 배경인데. 십대 성범죄에 관해서는 참 유럽도 관대하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피해자는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가해자는 피해자가 안나타났으면 그저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는 건 매우 애석한 일이다. 이런일은 실제로 많이 일어날 것이다.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무뎌지고 잘 잊어버린다. 그건 사회가 자신이 죄인지 아닌지를 무뎌지게 만드는 것인가 그 사람이 싸이코 패스인가 의문이다.
LA에 사는 배우 사만다는 페이스북 친구로 아기때 헤어진 입양 쌍둥이를 찾게된다. 한국인 입양아 출신인 두 사람은 각자 프랑스와 LA 에서 자랐고 서로 연락하고 영상통화를 하고 직접 만나게 된다.
자매인걸 입양기관을 통해 확인하나? 어째든 공식 확인이 되고 서로의 양부모들도 만나며 두 가족이 끈끈한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둘은 한국에 찾아가 여행을 하고 친 엄마를 찾지만 친엄마는 만남을 거부한다. 그나마 아기때 돌봐줬던 임시 보호자를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자매는 아쉬워한다.
인상깊은 장면은 서로 두가족이 만나는 장면에서 뭉클했다. 어쩌면 가족이 두배로 생겨서 좋다고 한다.
그리고 친엄마가 만남을 거부한 것에 대해 좀 아쉬웠다. 염치가 없어서 그랬던 것인가. 그 사람의 입장이 안되봐서 모르겠지만 많이 아쉽다.
그 자매 중 한명은 어릴때부터 우울증이 있었다고 하는데 만난 후에는 조금이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유쾌한 영화는 맞지만 한편으로 많이 생각하게 되는 영화다.
나도 십년전에 외국에서 한국인 출신 입양인을 만난적 있는데 한국인시조?라고 바로 한국어를 할뻔했다. 물론 안했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난처할 뻔 했다.
인구도 적어진다는데 우리나라는 이 제도를 왜 유지하는 걸까? 저 가족은 다행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반도체며 K-어쩌고 하면서 발전된 척 하면서 이 제도로 애들을 국내에서 감당못해 내보는거 아쉬운 감정보다는 분노가 나올때도 있다.
이 사람들은 한국어도 못한채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어디다가 낼까. 분명 자신들의 의지대로 한게 하나도 없을텐데 말이다.
난 이 분을 진짜 본 적이 있다. 어느 영화제에서 자원봉사를 했다가 초대손님으로 봤는데 이 감독을 위해 대대적으로 준비했고 관심이 높았다. 난 전혀 모르는 분야라서 당시 프랑스 영화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멜리에"조차도 몇년후에 봤다. 기자회견에는 프랑스어로 하고싶은 말을 적고 온 팬들도 있었다.
그 후에도 난 그 감독에 대해 그다지 관심은 없었다. 페미니스트 감독이라고 하는데 볼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도 너무 난해해 보여서 안봤다.
그러다 본 영화가 바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 었다.
줄거리는 아네스 바르다와 사진작가가 프랑스 시골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얼굴을 찍고 크게 확대해서 벽이나 건물에 붙인다.
아네스가 여기 해볼까 하면 찍어볼까요? 사람들을 섭외하고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찍고 확대해서 붙이면 그럴듯하게 되는것이다. 이런 에피소드가 몇개를 한다.
어느 시골의 까페 예쁜 까페 종업원을 우산을 씌운뒤 사진을 찍고 건물에 붙이고 그 곳은 명소가 된다. 모델의 아들 인터뷰를 들어보니 너무 좋다고 한다.
지금은 폐광이 되어 재개발로 마을이 철수를 했으나 딱 한집만 남아 있었다. 절대 이사를 안갈거라고 하는 할머니는 그저 이 마을에 추억이 많았을 뿐이었다.
광부들의 사진과 할머니의 사진을 출력해서 오래된 집에 붙였다. 할머니는 감격해서 울었다. 할머니는 떠나야 하는 곳에서 과연 떠날수있을까?
농부의 창고에서 넓은 땅을 혼자서 일하는 농부를 찍고 확대해서 붙이는데 농부는 뿌듯할것 같다. 여긴 내 농장이야 하면서..외롭지 않을것 같다.
해변에서도 사진찍고 붙이다가 바닷물에 씻겨나가는 에피소드도 있다.
아네스는 이곳에서 찍을까 하고 괜찮은 작품이 되는 걸 보면 영화감독보다는
영화를 매개체로 한 순수 예술가로 보인다.
이 영화를 보고 더 궁금해져서 "아네스가 말하는 바르다" 영화도 봤는데 아네스 감독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하는 게 나왔다. 프랑스 예술의 전당같은 극장에서 혼자 자리에 앉아 왜 만들어졌고
그걸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썰을 관객들에게 푸는 건데
관객들이 그렇게 앉아서 한사람의 말을 듣는다는게 강의를 듣는 학생같아 보였다.
그 분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대단한 분이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고 아네스가 만든 영화 행복 (단란가족을 가진 유부남이 행복에 행복에 더하고 싶어서 바람핀다는 내용 ), 영화 방랑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중년이 된 여배우가
그 영화를 찍으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직도 감정이 있어 보였다) 아마 아네스도 젊었을적엔 엄한 감독으로 보인다.
다시 "아네스가 사랑한 얼굴들"로 와서 마지막엔 아네스가 옛날에 같이 일했던 배우를 만나러 갔다. 약속을 하고 그집을 갔지만 문전박대 당한다. 아네스는 난처해하고 실망한다. 그리고 다시 길을 간다.
그 장면을 보면서 배우가 예전 늙은 상사를 엿먹이는 방법인가 싶었다.
영화는 예술이란 작게 만들어도 되는거고 우리 주변에 누구나 가까이 있으며 금방 만들수 있다.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나도 사소한 일에 기분에 따라 찍고 다시 봐야지. 굳이 예술이 아니더라도 아네스바르다도 예술이라고 직접 대놓고 말한 적은 없다. 그냥 영화 찍었다...라고 했지.
이 배우는 그냥 귀엽다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니 역시 이태리의 시골 마을이 이쁘게 나왔다. 다만 영어로 된영화라서 이태리인 끝이 올리는 말투를 썼더라면 영화랑 잘 안어울려서 영어로 쓴건가.
줄거리는 1980년대 열일곱소년 엘리오(티모시살라메) 가족별장에서
미국인 청년 스물넷 청년올리버(아미해머)가 아버지의 보조연구원으로 오면서 여름동안 지낸다.
엘리오도 여친이 생기고 올리버도 여친이 생기고
그러다가 엘리오와 올리버가 사랑에 빠지고 올리버가 다시 미국으로 떠난다. 동성애지만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나름 퀴어영화이지만 이 영화는 싱그러운 이태리 시골을 방문하는 느낌이다.
올리버로 나오는 아미해버가 전형적인 이상적 미쿡 남자. 금발의 파란눈 굉장한 외모로 등장한다. 신인배우인가 했는데 그 유명한 페이스북 영화에 나왔던 쌍둥이 재벌이었다.그때보다 성숙해져서 못알아봤네..
이 영화의 결말은 당연히 첫사랑은 헤어지듯 헤어지는건데.
인상깊은 장면은 떠난 올리버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게 되고 엘리오는 낙담하게 된다. 그런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두둘겨 패지 않고 (80년대 한국이면 두둘겨 패고 정신병원에 보낼수 있다.) 아버지는 다 알았다고 그 나이에 사랑할수 있다고 하면서 부모님이 사랑에 아파하는 자식을 위해주는 장면에서 엘리오는 참 건강하게 성숙해질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눈물을 흘리는 티모시 살로메 얼굴을 비추며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너무 멋진 앤딩이었다.